72년에 서울약대를 입학한 동기들^

 

어언 입학 50주년을 바라보고있는 초로의 신사가 됬다

 

거참 대학 졸업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세월이
흘러 갔다

 

졸업20주년 행사가 1996년도 IMF 직전에 관악산 모교에서 열린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벌써 사회적으로 크게 성취를 이룩한
친구들이 몇몇 눈에 띄었었다^ 당시만 해도 겉으로는 태연한척들
했지만 속으로는 나름 긴박한 팽팽한 기싸움 같은게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또 20여년이 지났다. 이제 우리도 늙은 세대가
되었다. 20여년 전에 비해 많이들 평준화가 되어 체면도,자존심도,
잘남도, 못남도,뭉뚱그려지게 되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모여서 얘기하는데 당연 웃음이 만발하게 되었고
중학교 내지는 고등학교 동창회를 방불케 된것이다^

 

고향 전주에 뒤늦게 진을 친 임익근 친구가 원근의 동기들을 초대한
형식으로 이루어 졌는데, 전부 합쳐 11명이 토욜 저녁에 전주의
'참 예우' 란 식당에 모였다^

 

 

 

 

우리 동창들이 대략 80명이 입학을해서 그보다 몇명 적게
졸업을 했는데, 여동기가 17명이나 되니 남자는 60여명, 그 여동기
상당수가 아직도 가사에 묶여 있기도하고, 아니지 이 나이에 집에 묶여
있다는게 말이 되나? 또한 해외로 나간 친구가 상당수인데다 졸업후 또
상당수가 세상을 떠난지라 막상 국내에서 모일수있는 숫자는 대폭
줄어든게 사실이다

 

현재 단체 카톡방에 참여하는 인원이 총38명이니 11명이 전주에
모인것도 나름 꽤나 많이 모인 셈이다^ 아마도 20명쯤 모이기도
무척이나 어려울듯하다!

 

 

이번 모임을 초대하고 주선한 임익근 동기

 

 

허나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마치 남북 이산 가족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듯 우리들 동기 모임도 자칫 그렇게되기 십상인지라 이제는
모임을 젊을때 처럼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하호호 격의없는 대화는 소주맥주 폭탄주와 더불어 짙어만 갔고
장소를 옮겨 전주천이 흐르는 한옥마을 어귀의 한벽루 개울가에 진을
치고 서울서 각종 연주 장비를 한 차 가득 싣고 온 김상덕이의 섹소폰
연주를 시작으로 본격 여흥에 들어갔다^

 

김상덕 친구

 

 

사실 요즘 섹소폰은 워낙 많은 사람들이 취미로 연마하는지라

예전처럼 귀한 대접을 받지는 못하지만, 뭐가 됬건 약국하면서

틈틈이 저렇게 연습해서 연주할 정도가 된 걸 우리는 무척 대단한

것으로 여기고 즐거워했다.

 

나도 한때 섹소폰을 해볼까,,하고 이것저것 자료를 찾고 준비를

해 보았으나 막상 연습을 할 시간도 장소도 너무나 마땅치 않아

포기한적이 있었다.

 

그러나 애써 마련한 여흥 자리는 장비가 땅에 떨어지는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서 끝이났다. 어두운 밤이라 그렇게 되었다.

 

해서 개울 건너 노래방으로 이동을 했다. 밤 11시가 넘어서였다.

약 2시간 반 정도 여한없이 노래를 하고 나니 땀이 등줄기에 흥건하다

이미 술이 취할대로 취한 동기 회장 이용연은 계산을 두번이나 하려는

지경으로 취했고 우리는 밤 2시가 넘어 전주 천변을 갈지자로 걸으며

밤하늘을 맘껏 올려다 보면서 한옥 숙소로 돌아왔다.

 

이날 세번의 머리 맞댐을 가지면서 우리는 거의 15년치의 웃음을 다 쏟아

내었다. 크고 작은 옛날 에피소드부터 개인적 숨겨둔 얘기, 등등

원초적 상태로 인간이 돌아가면 얼마나 많은 웃음을 유발시킬 수 있는지

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문제는 여럿이 한방에서 자야하는 취침시간이다. 베개만 대면 잠이 드는

사람들은 대개 코를 심하게 곤다. 순서가 거꾸로 되어야 하거늘 세상은

늘 그렇듯 바뀌어 되는게 순리인 모양이다. 즉 코를 고는 친구들이

늦게까지 뒤척이다 코 안고는 친구들이 잠이 든후 코를 골며 잠이 들면

얼마나 좋을까 마는,그 반대라니^

 

아이고, 오늘 밤 잠은 글렀네,, 하다가 어느틈에 깨어 보니 새벽

6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할렐루야! 나무아미

타부르~

 

코를 무지막지하게 골던 친구는 조용히 평화롭게 자고 있다. 이게

무신 시츄에이션? ㅎㅎ

 

세네갈과의 축구 재방송이 있었지만, 나는 밖으로 향했다. 좀 늦은

아침이 되었지만, 고즈넉한 한옥 마을의 아침 정취를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침 9시 반까지 약속된 아침 식사 시간 전까지 한옥 마을을

이곳저곳 탐방해 보았다^

 

 

 

 

그러다 문이 열린 어느 한옥집을 발견했는데,,

우와 여기 정원수가 장난이 아니었다. 마치 커다란 분재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나두 생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전국에 한옥집은 많다. 오래된 고택도 많고,

그렇지만 한옥에 이런 정원을 꾸민 집은 그리 많지 않을듯

하다

 

사실 엊저녁 묵은 한옥집을 두고 다른 집을 이토록 집중

사진을 올리는게 좀 뭐하긴 하지만, 이 글을 보고 전주 한옥 마을에

혹시라도 숙박을 하신다고 하면 그 분들에게 객관적 시각을 제시함이 마땅하지

않을까? 해서다. 물론 내가 한옥 마을 전부를 돌아본 건 아니다^ 여튼 내가

본 것 중에서 그렇단 말씀이다

 

 

이집의 이름은 '이오당' 이었다. 어제 숙박한 한옥집

카페의 아가씨가 이오당 얘기를 하니

 

"거긴 한옥집도 어디서

공수해 왔고 거기 나무들도 몽땅 어디서 가져온 거예요 "

 

한다. 하지만,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집이란게 원래 있던 자리에

있어야 하고 나무도 그래야 할지 모르지만, 암튼 현재의 이오당은

내 눈에 멋지게 보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막상 이오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의 말은

이랬다.

 

 

" 손님이 많아서 우리들은 죽을 지경이에요"

 

딴은 틀린 말은 아니다만,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그런 말을 종업원이

하면 쓰겠는가? 좀 힘들어도

 

" 네에, 멋진 집이지요? 한옥뿐 아니라, 이런 기막힌 정원을 딴데서는

구경하시기 힘들거예요~ 언제든지 놀러 오세요!! "

 

이렇게 말해야 옳지! 으휴^

 

그러게 세상에는 항상 명암이 있기 마련임을 새삼 깨닫게 되는데,

 

 

 

도로를 저런 돌로 깔았다^ 아마도 유럽을 가시면 저런

보도 블럭을 자주 보실 수 있을것이다^

 

 

 

어떤집 마당에는 이렇게 달개비가^

 

 

또 어떤 집은 이렇게 대문을 머루인지 포도인지로

꾸미고

 

몇년 전에 당일치기로 수원시 약사회에서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헌데 그땐 숙박도 물론 안했지만, 해설사를 따라

하루죙일 다녔는데, 이런 고즈넉함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당시 내가 느낀 한옥 마을은 그저 날림수준 이었다. 수많은 인파에

끝없이 늘어선 가게앞 줄^ 그저 그런 별로인 음식 수준^ 등등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왜일까? 여행의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여행이 됨을

새삼 느낀다^

 

 

 

숙박한 한옥집에 딸린 카페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부산에서 새벽에 버스로 달려온 김성모 친구를 기다려

근처 한벽 식당에서 매운탕으로 아침을 먹기로 했다

 

 

매운탕, 민물 매운탕!

 

아침 식사로 매운탕을 먹는다는 건 통상적이지 않다^

매운탕에 들어간 피래미도 어마무시하게 많았다^ 시골서

자란 나는 이런 음식에 매우 익숙하다^

 

바로 앞에 흐르는 개울물도 깨끗하지만, 피래미는 근처 옥정호

에서 가져 온단다. 옥정호는 사진 애호가 사이에 널리 알려진 안개의

명소인데~

 

 

여기서 우리는 또 한 10년치의 웃음을 쏟아낼 수 있었다

 

특히 김상덕 친구가 당시 육사를 지원했다 마지막 신체 검사에서

30KG 짜리 역기를 들어 올리지 못해 탈락한 사유를 설명하는데,

모두들 배꼽을 잡을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친구들 모두는 비슷한

자신만의 에피소드가 있을것이다^ 그걸 하나하나 풀어 내면 몇년간

할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앞서 지난밤에 15년치, 오늘 아침 10년치 웃음을 웃었으니

그것만해도 이미 여행의 목적은 달성하고도 남음이 있는것 아닐까?

 

그리고 이것은 이제 70을 바라보는 이 나이가 되어서 가능한 일

이라 생각된다^

 

아침식사 후 우리는 임익근 친구의 안내에 따라 한옥 마을을 본격 탐방

하게된다^ 이곳은 다른 곳과 다르게 조선의 역사가 생생하게 담겨

있는 곳이다. 친구는 그간 갈고 닦은 실력으로 출중한 해설을 이어갔다

 

 

 

 

역사가 깊은 전주 향교!

 

 

열심히 설명을 듣고 있는 친구들^

 

 

활쏘기 체험을 하는 탐방객들^

 

 

 

 

\독립운동에 거금을 쏟아붓고 해방후 2대 전북 지사를 지내신

장현식 지사님의 고택을 이곳에 옮겨온것 이라는데,

 

단아하지만 기품이 묻어나는 저택이다

 

 

 

이날 뜻깊게 본 집이 또 하나 있으니

 

바로 수원백씨 종택이었다

 

 

주인이 대문을 열어주어 간신히 촬영한 전경^

 

이 집은 관람료도 비싸지만 누구나 아무때나 볼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반드시 예약이 필수이다

 

수원 백씨가 지금 우리 약국이 있는 수원에 무척 많은데

이런 일화가 있을줄은 미처 몰랐다^ 다시금 생각해 보게하는

수원 백씨!

 

 

 

제비 두어마리가 날쌔게 날라다니길래 한컷 했다

제비는 무공해 지역이 아니면 이제 절대 안 오는데,

이곳 한옥마을이 청량하다는 증거이다^

 

 

 

날씨도 더운데 긴팔을 입고 저렇게 고적대 행진을

하고 있었다^ 우리야 보기 좋지만, 꽤나 고역일듯^

 

 

전동 성당 내부

 

전동 성당에 얽힌 얘기도 처음 들었는데 가슴 아픈

스토리가 있었다^ 구한말 천주교 박해때 수많은 신자들이 인근 성문에

효수가 되었는데, 나중에 그 순교를 기념해서 여기에 성당을 지은 거란다.

 

그저 구경만 하며 야아! 하고 감탄만 하기엔

너무도 거룩한 곳이었다

 

 

 

최명희 소설가 기념관 앞 집에 핀 산철쭉^

 

 

 

한옥 마을에 너무나도 많은 석류꽃!!

석류와 이곳 전주 한옥 마을과 무슨 인연이 있을까?

그냥 우연히 심은 걸까?

 

 

 

이곳 근처에 임익근 친구의 처갓집이었던 지금은

조선 황손 이석씨가 기거하는 고택이 있었다^ 예전에

아주 싸게 팔아버린 걸 친구는 무척 아쉬워하고 있었지만,

그게 세상 일이니 뭐 어쩌겠는가?

 

 

 

담장과 기와가 멋지게 어우러진 골목길^

 

우리들은 경기전 앞에 있는 전주 한국관에서 비빔밥 등으로

점심을 먹고 근처 커피숍에서 쥬스 한잔씩을 마신후 다음

만날것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이곳의 대표적 명소인 어진이 보관된 장소와 서고등의 사진은

생략되었음을 밝힌다^

 

이렇게 역사적인 72 동기회의 전주 모임은 끝이났다^

 

 

모임을 만들어 초청해준 임익근 친구와 동기회장을 맡아

수고해준 이용연 친구,그리고 멀리 부산에서 와준 김성모

친구, 수원의 이재철,김영수 친구,대전의 김광식, 서울에서

내려온 유태숙, 김상덕,김영숙 부부 , 권용화 친구,멀리

전남 곡성에서 달려와준 노일근 친구,

 

모두 모두 건강하여 다음 모임에서도 만날 수 있기를 간곡히

기원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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