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이미 깊숙이 이 땅에 들어와서 저 쪽으로 빠져나갈 틈을 찾고 있는듯합니다.
헌데 올 가을은 저에게는 그저 건성입니다. 오직 출퇴근 시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을
그저 가을로 받아들여야하는 처지가 되었네요.
근 한달만에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니 노란 계수나무 잎은 거의 다 떨어져
동전처럼 노리끼리한 잎새를 몇 개 달고 있고 대신,산수유는 빨갛게 익어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군요.
마음이 바쁘면 꽃도, 나무도, 열매도, 단풍도, 눈에 스치기만
할 뿐 가슴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는 말이 새삼 느껴집니다.
'이렇게 적당히 살아가기는 좀 그렇지~'라는 생각을 늘 하고는
있었지만, 갑자기 새로 약국을 옮겨갈 것은 예상을 못했고 후다닥 일을
마치긴 했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지난 20여 년간 새로운 약국을 열어야지~ 하는 생각은 늘상
해 왔었고 기회가 되면 떠나고자 했지만, 그것이 마음만 그럴뿐 실행에 옮기는데는
상당한 결단과 준비가 필요한 일이었지요.
그러던 중,
9.18일에 장소를 물색하여 인테리어 및 폐업, 개업 절차를 거쳐 10.18일에
오픈을 했는데 지난 30여 년간 한 자리에 말뚝을 박고 지내다 모든 걸 접고
다른 동네에 묘목을 새로 심는 일이 간단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예전 인터넷이 그럭저럭인 시절에는 사업장을 옮기는데 복잡한 수속이
그닥 없었습니다. 헌데 선진 한국이 되고 보니 그 모든 게 전부 인터넷, 컴퓨터를
거치지 않으면 되는 게 하나도 없더군요.
은행 문제, 인증서 문제, 카드, 카드 단말기 은행 이전 문제, 약국 폐업, 개업,
등록증 발급 같은 보건소 문제, 캡스 같은 보안기기 설치 문제, 전화 팩스 이동,
인터넷 이전, 하다 못해 정수기 설치에도 몇 번의 인증문자와 확인을 거쳐야 되고
병의원 처방 처리와 관련된 심사평가원 건강보험공단, 등등도 하나같이
다 그랬습니다.
젊은 친구들이야 그런 게 생활 자체였으니 별 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아날로그
세대인 저는 모든 게 낯설고 힘들게만 느껴졌지요. 또 지금까지 그런 실무적인
것들은 대략 맡겨놓고 널널하게 일을 해 오다가 이번에 막상 직접 부닥치자 앞이
캄캄해지기도 했고요.
뭐 하나 물어볼 게 있어 전화기를 돌리면 무슨 놈의 끝도 없는 ARS를 들어야 하고
상담원은 항상 만원이라 기다리다 지쳐 수화기를 수도 없이 놓아야 하고,
그러다 또 다른 일이 겹치면 잠시 잊어버려 뒤죽박죽이 되고! 겨우 생각이 나면
처음부터 다시 전화를 돌리고! 등등, 에혀~
이런 일들을 힘들다 하기는 그렇지만,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했습니다. 거기다 시간도
촉박했고~
하루하루를 꽉 채워 힘들게 일하는 분들이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저녁에 돌아오면 TV 앞에 앉기가 바쁘게 잠에 곯아떨어지는 일상이 반복되었지요.
마치 1주일이 한 달이 지나는 것 같고 허리가 아파져 엉거주춤한 자세로 걷고, 이
모든 게 지난 한 달 바쁘게 지낸 여러 궤적의 결과로 생각됩니다.
그간 용인으로 이사 와서 매년 10월 30일경이면 가을을 알려주던 동네 앞
떡갈나무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예쁜 단풍이 들었는데, 이미 한 이틀 전성기를 넘긴 듯합니다.
매년 보는 단풍인데 뭐 새로울건 없지만, 늘 반갑습니다. 같은 참나무 科 지만
유독 예쁘니까요. 아주 독보적이지요.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이것까지 놓치면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이 들어서
휴일 오늘 아침 카메라를 들고 나가 보았습니다.
아직도 해결해야 할 일이 꽤나 남아 있지만, 그래도 조금 숨을 쉴 수는 있게 되었습니다.
설령 그렇게 당분간 살아가더라도 사진 찍기와 글쓰기까지 멀리하면 정말 안 된다는
생각에 모처럼 노트북 앞에 앉아 두서없는 글을 적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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