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과 사진

길상사의 꽃 무릇

춘강마로니에 2017. 10. 7. 15:12


2017년 추석 연휴는 단군이래 가장 길었지 않았을까?
무려 10일^ 캬!


그러나 우리같이 약국을 하거나 기타 명절에 쉴수없는 많은 직종은
그림의 떡이다. 허긴 뭐 10일씩 쉬어봐야 뭐하나? 워낙에 일에
주눅들은 이나라 백성들은 많이 쉬어도 문제다. 잘 쉬는 법을 일찌기
습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1년에 이틀 연속 쉬는건 추석과 설이 유일하지만, 그래서
추석 다음날 혜화동을 가게 되었다. 혜화동 로타리 부근에 집사람
할아버지가 그 옛날에 99칸짜리 한옥집을 짓고 사셨다는데 아들이
그 얘길 듣고는 그 집을 꼭 찾아봐야 한다고 벼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남의 소유로 되었고 문패도 번지수도 다른 옛 기와집^ 열심히
둘러본 결과 혜화동 16번지 그 집을 찾아볼 수 있었다. 간단히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마치고 둘러 보니^


예상되는 옛 집터는 바로 이곳^

99칸 기와집의 위용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인근 식당의 명절 휴일 안내문^


붓글씨로 아주 멋지게 썻다^ 아내는 우리 약국 휴일 안내도

좀 저렇게 멋있게 써보라고 했다^



성북동 길상사 올라 가는길 - 좀 높이 오르자 고급 주택가가

나타난다^ 이 집은 에티오피아 대사관저이다.


길상사에는 벌써 꽤 많은 분들이 와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끼긴 오래 묵은 참나무


단풍나무 위로 빨갛게 감이 익어간다^

단풍이 완전히 들땐 감이 없어질지 모르겠다




어찌보면 성모마리아상 같게도 보이는 관세음보살상

밑에 표지글에 설명이 되어있다



조촐하지만 사찰을 대표하는 석탑도 있다




많은 분들이 기억하듯이 이곳 길상사는 원래 대원각이라는

요정이었고 음식점이었다. 1980년초 나도 이곳에 식사를하러

한번 온적이 있었다^



길상사가 유명해진건 다름이 아니라 바로 대원각 주인이던 김영한과

백석이란 분의 기막힌 러브 스토리 때문이다. 당시 싯가 1000억원이

넘는 재산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하며 김영한이 말한 1000억 보다

백석의 시 한즐이 더 낫다고 한말^~ 허참! 그게 과연 진실일까?

실제 그렇게 말했을 가능성이 크다^ 1000억 돈이 시 한줄만 못

하다는 그 가치관을 요즘 사람들이 받아들이긴

좀 힘들것이다^






사찰로 변모하긴 했지만 여전히 옛 대원각의 자취가

곳곳에 묻어나고 있었다



독립 식당으로 쓰이던 통나무집은 이제 스님들의

기도하는 곳으로 바뀌어 있었다



법정스님의 유골 일부가 모셔진 곳이다


이름모를 꽃이 환하게 피어 스님의 넋을 위로하고

있는듯했다



진영각에는 법정스님의 유품,글,유언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진영각 바로 밑 화단엔 꽃무릇이 이미 다 지고

없었다


그런데 꽃무릇의 잎새, 아니 새싹을 보니 예전

시골서 보던 바로 무릇 과 같았다 무릇의 저 싹을 캐내면

바로 밑둥에 쪽파같은 동그란 뿌리가 나온다

근데 왜? 우리 시골엔 꽃무릇이 없었을까?



한번 휙 읽고 지나칠 글은 아닌듯하다


공덕비 위쪽에 사당이라고 되어있고 그안에

시주 김영한님의 영정이 존치되어 있다



길상사의 연유를 적은 글과 백석의 시한편^


사실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이 이곳을 방문했지만 집에와서

백석의 시를 다시 찾는과정에서 인터넷에 올라있는 몇가지 사실을

접하게 되었는데^


본래 이곳 대원각 땅을 사서 음식점으로 만든이는 박헌영의 누님 이었다

박헌영은 해방후 미 군정 치하에서 수배령이 내려지자 북으로 피신을 했고

그때 그 누님의 딸 즉 조카인 김영한에게 이곳 대원각을 맡겼다한다.

박헌영에게는 아들이 한분 있었으니 지금 조계종 원로스님인 원경 스님이시다.


김영한은 인수당시 나중에 이땅은 아드님인 원경스님에게 다시 돌려줄것이다

라고 했다는데, 결국은 법정 스님에게 시주를 한것으로 해서 돌려 드리게 되

었으니^


이상 간략히 인터넷상으로 습득한 내용이고 더 깊은 내막은 잘 알수가 없다.


그런데,


백석은 영한에게 3번의 탈출을 권유했다는데, 그녀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저토록 아름다운 시를 남긴 백석은 중국을 거쳐 북한에 정착하여

조만식 선생의 러시아어 통역관으로 일했다지만, 결국은 합동 농장에 유페

되어 쓸슬한 말년을 보냈다는데, 그들의 기막힌 러브 스토리에 비해 결말이

너무도 쓸슬하다^


길상사를 돌아보니 참으로 인생이 무엇인가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사랑도,눈물도,부귀도,영화도,문학도,詩도,

이거이 다 뭐란 말인가??



아내는 저곳에 길상화 보살이 생전 거주했던거 같다고^



극락전 앞뜰의 과꽃



굵은 느티나무가 이곳의 연륜을 말해주는듯^



다시 일주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