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약국을 떠나며~
아파트도 10여 년 살다 이사를 하게 되면 섭섭한 마음이 드는 건 인지상정이다.
직장은 물론이고 세상 그 어떤 일이 건 10여 년 아니 5년만 머물다 떠나도 아쉽기
는 매한가지다.
헌데 30여 년을 일하다 막상 떠난다 하면 그 소회가 남다를 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1990년 겨울 찬바람이 휑~ 하니 불어제끼던 어느 날 뼈대만 앙상하게
완성된 이곳 임광아파트 상가에 무엇에 떠밀리듯 와서 약국 인테리어를 하고
새롭게 시작을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3년이 흘렀다.
40대 50대 60대를 거쳐 나의 중년은 바로 이 동네에서 지났던 것이다.
지나고 나면 어느 세월에 그렇게 됐나? 생각도 들지만 이 동네에서 약국 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초중고 대학을 모두 마쳤고 결혼을 했으며 또한 동네 아이들이 코흘리개
어린이로 시작해 역시나 학교 전 과정을 마치고 결혼하여 자녀들을 데리고 약국을 방문
하는 건 매우 종종 있는 일이 되었다.
그러니 내 인생의 중 후반부 모두가 이곳에서 약국을 하며 지나간 것이다.
당연 감회가 크고 추억도 많고 할 이야기도 많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한 개인의 일상에서 이런 일은 흔한 것이며 그렇다고 그것이 타인에게 무슨
감명을 주는 스토리가 될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그런 하나의 일상이 아니겠는가?
혹자는 말한다.
" 거 뭐 떠나면 그뿐 무슨 미련이 남는단 말이오? "
사실을 말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살아오면서 여러 동네를 거쳤고 또 그 동네를
떠나왔다. 잠시 섭섭했지만, 금세 잊어버렸다. 그리고 떠나온 동네를 다시 그리워 찾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단 하나 내가 태어나 16년 정도를 살았던 고향 동네는 그렇지 않았다. 불과 16년이지만
그 어떤 긴 세월보다 고향은 깊이 내 가슴에 박혀 있다.
그러니 고향도 아닌 동네는 떠나면 그뿐인 것이다.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직장 생활의 일부를 지냈던 서울 영등포 대방동, 신길동, 독산동
일대는 꽤나 추억이 어린 곳 이긴 하지만, 일부러 다시 찾아간 적은 거의 없다. 잠실 주공
5단지도 그랬고 신혼살림을 차렸던 과천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세상 모든 일은 인연 따라 일어난다는 불교의 가르침이 새삼 생각이 난다.
내가 오랜 시간 터를 잡았던 이곳 수원 임광아파트 단지도 이제 인연이 다 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이제 이 나이에 뭐 얼마나 새로운 일이 생길지는 모르지만, 새로운 동네 용인으로 일터를
옮겨가게 되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다 그런 의미가 있고 새로 갈 곳은 또한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제껏 무탈하게 내 인생의 중반부 30여 년을 지냈던 나름 보람과 행복을 주었던
곳이다.
그 모든 것이 다 하느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