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달간의 기록
"그 나이에 일을 새로 시작하다니~
참 용기가 대단하오~ "
근데 그게 왜 용기도 용기지만 힘든 일인지는 약국 오픈하면서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 그래 만만한 일은 아니군! 이건 용기만으로 될 일도 아니고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야~ 미래에 대한 걱정 근심도 이겨내야 하고~"
잘못해서 감기나 걸리거나 어디 아프면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0월 18일 문을 연지 3번째 주를 넘기자 비로소 약간의 여유를 찾게 되었다.
요즘 약국이 그저 10여 평 남짓으로 운영되는 건 보통의 일이다. 어떤 곳은 5평도 안 되는
공간이지만 총매출이 높아 지역화폐도 받지 못하는 곳도 있다. 뭐 그래도 상응하는 급부가 상당하니
비좁다해도 참을만하다 할 것이다.
인간의 삶이 거주공간에 일정 부분 지배된다는 얘긴 대체로 공감하는 것이지만, 해서
아파트도 무조건 큰 평수로를 외치던 시절도 있었다. 넓은 학교 운동장, 큰 강당~
이런 것이 당연 개방감과 자유의 느낌을 주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어쩌다 30평의 비교적 큰 약국을 열게 되었다. 이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어쩌면 필연이었다고 볼 수도 있을것이다.
이 나이에 그저 조그마한 약국을 한다 해서 안될 것도 없었고 또 그것이 나에게는 훨씬
편했을지도 모른다.
허지만 아내는 이번 일은 순전히 하느님의 도움으로 성사되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진행 과정에 드라마틱한 부분이 꽤나 있었고 연결해주시는 분들이 거의가 성당 사람들이
었다.
넓은 약국에 혼자? 처음엔 그게 좀 꺼려지기도 했다.
헌데, 혼자면 어떤가?
뭐 대단할 일은 아니지만, 이 나이에 일터 자체가 있다는 게 어딘가?
약간의 힘은 들었지만(사실은 약간은 넘었지만), 나는 만족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 겨우 정신이 좀 들어 엊그제 아침 우리 동네를 아주 잠시 둘러보았다.
올 가을은 단풍에 관한 한 아무래도 텃새 수준을 면치 못하리라는 예상을 해 본다.
어딜 멀리 가 본다는 건 좀 무리일 듯하다.
그동안 수년간 한가한 약국을 하면서 잘 돌아다녔지 않은가?
올해 단풍은 좀 시원찮을 걸로 예상을 해 보는데, 산수유는 열매가 예년에 비해
실하다.
그렇다면 이천 산수유 마을을 이번 가을에 꼭 가봐얄텐데~
약국 주차장에 내려 건물에 입점한 의원이며 약국, 필라테스 등을 찍어 본다.
건물과 인접하여 바로 뒤편으로는 용천 초등학교가 있다.
우리가 용천 온누리약국으로 상호를 정한 데는 바로 초등학교 이름도 한몫했다.
전에는 옆에 같은 이름의 고등학교가 있었다.
늘 학교 이름을 따라가다니~ 이건 또 무슨 일일까? 용천 초등학교는 1934년에
개교를 했다 한다. 용천은 땅에서 용솟음쳐 올라오는 샘 이란 뜻이다. 이 동네 부근에
그런 샘들이 많다고 들었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학교를 가는 모습을 본지 꽤나 오래되었다. 뭔가 신선하고?
또 새롭다.
운동장 한구석에 노란빛을 드리우는 은행잎이 아침햇살에 빛난다.
내가 다니던 예전의 초등학교 입구에도 큰 은행나무 2그루가 가을이면
노랗게 물 들었었다.
네이버 지도에 사진을 올리려고 한 장 찍었다.
혼자 감당해 나가기에는 다소 넓은 감은 있지만,
온누리의 도움으로 모처럼 깔끔한 세팅이 가능하게 되었다. 나 혼자 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지난 30여 년간 약국에 갇혀 지내다 보니 세상 감각에 많이 뒤처져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특히 인터넷, 컴퓨터, 각종 관련 인증절차, 사무처리가 너무도
많이 달라졌다.
묻고 또 묻고 시행착오를 무수히 거쳐 겨우 조금씩 적응해 나가는 중이다.
온누리가 지향하는 가치 철학이 무엇인지를 뚜렷이 보여주는 심벌이다.
행복, 즉 happy 하게 건강하게 살자~ wellness 가 여러 의미로 해석될 것이나
아무튼 좀 건강하게 즐겁게 살아감이 많은 이들의 희망이자 목표가 되어야 할것은 자명하다
할것이다.
약국이 일정부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난 2-30년 전 나 역시 그런 모토를 세우고 살아왔지만, 중간에 상당 기간 약국이 뜻대로 되질 않았다.
본업이 불충실하니 아무리 열심히 살았다해도 약간은 공허함이, 아니 빈 구석이 있었던 셈이다.
의약분업의 출발인 2,000 년도가 그 분수령이었다. 벌써 20여년 전이다.
이제 욕심을 크게 부릴 이유도 없고 시류에 어느 정도는 부응하는 그런 약국을 하고자 한다. 시류라 함은
분업 환경에 웬만큼 따라가는 걸 의미한다.
적절한 말은 아니지만 하루 온종일 처방만 처리하는 그런 약국은 하고 싶지도 않고 할 위치도
아니다. 주민들과 건강 얘기도 나누고 그들에게 도움도 주고 그렇게 하는 걸 나는 원하고 또 좋아한다.
약국의 역할이 상당 부분 그런데 있다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용천의 하루는 빡빡하게 돌아간다.
저녁을 아예 해결하고 집으로 퇴근하니 집에서 밥을 먹을 일이 없어졌다.
밤 10시면 곯아떨어지고 아침 6시면 일어난다.
그렇게 11월이 가고 있다~
가을도 가고 있다~